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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만행 확인’ 발표 한달만에 “단언적 표현 써 심려끼쳤다” 사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23일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씨를 사살·소각한 사건과 관련해 “(군이) 단언적 표현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밝혔다. 군이 지난달 이번 사건을 발표하며 “북한이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했다”고 한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여권에서는 군 발표 직후 북한으로부터 “사살은 했지만, 시신을 소각하진 않았다”는 취지의 통지문을 받은 뒤 “군의 발표가 성급했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서 장관의 이날 발언에 대해 군에서는 사실에 근거한 첩보조차 북한의 발표에 꿰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파워볼사이트

서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합참 작전본부장 발표에서 불로 시신을 훼손했다고 했는데 불빛 관측 영상으로 시신 훼손을 추정한 것 아니냐’고 질의하자 “추정된 사실을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단언적인 표현을 해서 국민적 심려를 끼쳤다”고 했다. 서 장관은 박 의원이 ‘늦어지더라도 진실에 가깝게 근거를 갖고 발표하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하자 “지적하신 대로 첩보를 종합해 가면서 그림을 맞춰가고 있었는데 언론에 나오면서 급해졌다”며 “(소각 관련) 부분을 좀 더 확인하면 명확히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법사위 국감 출석한 서욱 - 서욱(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에 출석, 박경수 법무관리관과 대화하고 있다. 서 장관은 이날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소각 사건과 관련해 “(군이) 단언적 표현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법사위 국감 출석한 서욱 – 서욱(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에 출석, 박경수 법무관리관과 대화하고 있다. 서 장관은 이날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소각 사건과 관련해 “(군이) 단언적 표현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군 당국은 지난달 24일 ‘국방부 입장문’에서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했었다. 당시 군은 “시신에 기름을 부었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발표했다. 서 장관은 사살 사건 발표 당일 시신 소각의 정황 증거 중 하나로 “40분 동안 불빛이 보였다”고 했다.파워볼

하지만 북한이 바로 다음 날(25일) “(이씨를) 사격한 후 수색하였으나 침입자는 부유물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며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해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 방역 비상 대책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자 입장이 난처해졌다. 사살은 했지만 시신을 소각하지는 않았다는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여권에서 “국방부 발표가 섣불렀다”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북한의 통지서 내용을 보니 우리 군의 첩보 내용이 부정확하다”고 했고, 군 내부에서는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우리 군 첩보를 다시 꿰맞추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왔었다.

서 장관은 이날 야당 의원들이 군 특수정보(SI)를 언급한 데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수정보 언급은) 매우 부적절한 워딩”이라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외에 다른 기관이 살펴보고 있다. 군 내 조사와 군 밖 조사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우리 군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국제적 비난을 우려한 북한의 해명 통지문에 군이 수집한 정보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후후월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정계 은퇴
대통령 시절에도 농사 지으며 검소한 생활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아” 은퇴 연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는 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던 그는 재임 기간 소박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퇴임 후에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고령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더이상 활동하기 어려워졌다며 국민에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검소한 생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린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20일(현지시간) 정계 은퇴선언을 했다. 사진은 2019년 멕시코에서 열린 한 강연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검소한 생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린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20일(현지시간) 정계 은퇴선언을 했다. 사진은 2019년 멕시코에서 열린 한 강연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로필에 ‘농부’라 적는 괴짜 대통령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 무히카의 ‘시그니처 패션’입니다.파워볼실시간

삶도 말 그대로 ‘무소유’였습니다. 2010년 취임 당시 그의 재산은 현금 1800달러(195만원),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한 대와 허름한 농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습니다. 가족도 단출합니다. 자녀는 없고, 우루과이 첫 여성 부통령인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75)와 다리 하나를 잃은 반려견 ‘마누엘라’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무히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색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무히카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AP=연합뉴스]
무히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색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무히카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AP=연합뉴스]

재임 기간에는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었습니다. 정작 대통령인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 직접 합니다. 마당에는 무히카 부부가 오랜 기간 가꾼 꽃과 화초가 무성하고요. 무히카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다네요.

이런 그를 전 세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하수구를 누빈 ‘로빈 후드’

무히카(왼쪽) 와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우루과이 부통령. 두 사람은 1970년대 함께 도시 게릴라 조직에사 무장반군으로 활동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토폴란스키는 2017년 우루과이의 첫 여성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EPA=연합뉴스]
무히카(왼쪽) 와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우루과이 부통령. 두 사람은 1970년대 함께 도시 게릴라 조직에사 무장반군으로 활동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토폴란스키는 2017년 우루과이의 첫 여성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EPA=연합뉴스]

193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과 함께 꽃을 팔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죠.

하지만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뒤 ‘도시 게릴라 운동가’로 변모했습니다. 1962년 도시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 인민해방운동(MLN-T)에 합류해 무장반군이 됐습니다. 하수구를 거점으로 게릴라 투쟁을 벌인 탓에 사람들은 그를 ‘로빈 후드’라고 불렀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교도소 땅굴을 파 두 번이나 탈출한 ‘탈옥수’로, 또 37살에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수’로도 기록됐죠.

석방된 뒤에는 정계에 투신, 1994년 게릴라 출신의 첫 하원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이후 1999년 상원의원을 거쳐 2005년 농축수산부장관을 지냈고요. 2009년 11월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 후보로 나서서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무히카가 2019년 우루과이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 당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무히카가 2019년 우루과이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 당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현지에서는 무히카의 무장반군 이력을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무력 투쟁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생겼다는 비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히카는 감옥 생활 얘기를 거의 꺼내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도 “투옥 생활은 반성의 시간이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혁명이란 사고의 전환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실용주의 정책으로 우루과이 정치·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마리화나(대마초) 합법화입니다. 정부의 통제 안에서 경작·유통을 허용해 마약범죄를 끊어내자는 취지였죠. 찬반이 극렬히 갈렸지만 무히카는 단호했습니다. “억압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주장이었죠.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사업에 남몰래 거금을 기부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서민주택 사업이 정권 막바지까지 반대에 부딪히자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월급 일부를 이 사업에 내놨다고 뒤늦게 밝히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7월 무히카(오른쪽)가 자신의 시골집에서 우루과이 외무장관 프란시스코 부스티요와 외교정책을 논의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7월 무히카(오른쪽)가 자신의 시골집에서 우루과이 외무장관 프란시스코 부스티요와 외교정책을 논의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내 월급을 보내서라도 서민주택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진솔한 고백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 총소득세 정책을 통한 조세개혁은 빈곤 감소와 성장률 제고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유럽발 경제 위기에도 우루과이는 매년 평균 5.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치를 존중한 정책으로 국민의 ‘책임감 있는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그의 퇴임 직후 지지율은 65%로, 취임 직후 지지율인 52%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리시아스, 페페”
무히카의 매력은 탈권위적이고, 친근하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입니다. 이런 그를 우루과이 국민은 “페페(PePe)”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20일(현지시간) 우루과이 의회에서 정계 은퇴선언을 한 뒤 자리를 떠나는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뒷모습. 무히카는 고령에 코로나19까지 덮쳐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며 정계 은퇴를 결정했다. [EPA=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우루과이 의회에서 정계 은퇴선언을 한 뒤 자리를 떠나는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뒷모습. 무히카는 고령에 코로나19까지 덮쳐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며 정계 은퇴를 결정했다. [EPA=연합뉴스]

2012년 유엔 지속 가능한 발전 정상회의에선 자신의 철학을 특유의 소박한 언어로 설파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그는 “갚고 또 갚고,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이미 노인이 되어 있고, 인생이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묻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루과이 국민들은 SNS에 무히카의 의회 마지막 연설을 기록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우루과이 중도연합당 프렌테 암플리오 트위터 캡처]
우루과이 국민들은 SNS에 무히카의 의회 마지막 연설을 기록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우루과이 중도연합당 프렌테 암플리오 트위터 캡처]

은퇴 연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수십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은 승리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남긴 마지막 연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자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작별인사를 달았습니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페페”

영화 ‘변호인’ 등으로 뜬 부산 흰여울마을에 무슨 일이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영도구의 ‘흰여울마을’. 약 66㎡(20평) 남짓한 낡은 하얀 집은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영화 ‘변호인'(2013년)에서 송강호가 국밥집 아줌마 김영애의 아들을 변호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찾아가는 장면 등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재 마을 안내소로 쓰고 있다. 그런데 올해 말이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 있다. 건물을 부산 영도구에 무상으로 빌려준 소유주가 내년부터는 자신이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안내사 천애경씨는 “이곳 땅값이 말도 못 하게 뛰었지요”라고 20일 말했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동네가 촬영 당시 모습과 매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주변이 개발되고, 정비되면서 생긴 일이다. 낙후한 곳이 개발된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옛 모습을 잃어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등장해 유명해진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 시멘트 바닥이던 골목길은 깔끔한 콘크리트로 정비됐다. /부산=곽창렬 기자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등장해 유명해진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 시멘트 바닥이던 골목길은 깔끔한 콘크리트로 정비됐다. /부산=곽창렬 기자

흰여울마을에서는 ‘변호인’뿐만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2012년) ’암수살인'(2018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년) 등을 촬영했다. 현장은 영화의 1970년대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곳곳이 갈라진 회색빛 시멘트로 덮였던 골목길 바닥은 깨끗한 황토색 콘크리트로 바뀌어 있었다. 난간도 설치됐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잠시 비켜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흰여울마을 방문객은 2017년 30여 만명에서 2018년에는 67만여 명, 지난해에는 83만여 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이에 부산 영도구는 2015년부터 30억여 원을 들여 낙후한 하수관이나 계단을 교체하고, 공원도 조성하는 등 정비에 들어갔다. 영도구청 측은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중점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해안을 바라보는 650m 길이 마을길에는 크고 작은 카페가 20여 곳 들어섰다. A씨는 지난해 약 2억원을 들여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열었다. A씨는 “직장 생활을 접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관광객 수요 등을 고려해 카페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개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도 들썩이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곳 땅값과 집값은 1~2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부동산 관계자는 “서울 등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땅이나 집을 사들이면서 예전에 살았던 주민들은 많이 떠났다”며 “작년에 조금 오를 때 팔아치운 사람들은 아마 지금 땅을 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 영도구가 집 소유주에게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한 마을 안내소나 관리사무소 가운데 일부는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다. 소유주들이 직접 이용하겠다고 의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5곳 가운데 3곳 소유주가 직접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영화로 유명해지면서 땅과 건물의 활용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했다. 흰여울마을 외곽에 있는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주변에 있는 20평 크기 아파트 값은 작년만 해도 700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는 2억7000만원 정도로 올랐다. 인근 부동산에서 일하는 Y씨는 “흰여울마을뿐만 아니라, 재개발이 예정된 인근 지역까지 대부분 배 이상 뛰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흰여울마을에서 7㎞ 정도 떨어진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역시 으슥한 골목이나 옛 부산 모습 등을 담은 영화를 촬영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친구'(2001년) ‘하류 인생'(2004년) ‘아저씨'(2010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곳은 재개발로 사라질 처지다. 마을 한구석에서는 영화 포스터와 함께 이곳에서 촬영했음을 알리는 표지가 서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 김새론이 등장한 전당포 건물 등은 이미 아파트로 변했다.

주민들 입장은 엇갈린다. 매축지마을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서모씨는 “이곳은 너무나 뒤떨어졌기 때문에 진작 개발이 이뤄져 했다”며 “(영화를 고려해) 남겨야 할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활동하는 곽규택 변호사는 “개발도 좋지만, 영화 속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무의사, 지난해 1차 시험 합격률 0.1%
산림청 “시험 어렵다니 난이도 조정하겠다”

산림청이 도입한 나무의사 제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험이 너무 어려워 합격자가 적게 배출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반면 “나무의사도 전문가인데 시험을 너무 쉽게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산림청 “나무 의사도입 이후 최종 합격률 4%”

식물보호기술자가 병든 나무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식물보호기술자가 병든 나무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산림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나무의사 자격제도 도입 후 합격자 현황’에 따르면 제3회까지 치러진 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총 4300명(누적) 중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한 사람은 171명으로 4%에 머물렀다.
4300명 중 제1차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567명이었다. 특히 지난해 치러진 제2회 제1차 시험에선 1147명 중 1명이 합격했으며, 재시험을 치른 끝에 913명 중 25.1%인 229명이 합격했다. 김 의원은 “힘든 여건에서 적지 않은 교육비를 투자했으나 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로 허탈감을 준 것은 문제”라고 했다.

나무의사 제도, 수목 체계적 관리 위해 2019년 도입
나무의사 제도는 2019년 6월 시행된 개정 산림보호법에 따라 도입됐다. 이 법은 ‘나무의사(또는 수목치료기술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나무를 관리·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나무의사가 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우선 산림청이 지정한 교육기관(전국 10곳)에서 150시간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해충학 등 11개 과목을 배우고 실습하는 교육이다.

1차 시험은 수목병리학·해충학·생리학·토양학·관리학 등 5과목을 치른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과목당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 얻어야 합격하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2차 시험은 실기와 논문이다. 실기는 병이 든 나무를 진료하는 방법을 테스트하고, 논문시험은 질병 상태에 대한 올바른 처방전 작성이 핵심이다. 산림청은 연간 두 차례 나무의사를 선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무병원은 수목보호기술자, 식물보호기사, 식물보호산업기사 등 3가지 자격증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무의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시험 합격자만 나무병원을 열 수 있다. 나무의사는 지역이나 장소 구분 없이 나무를 치료할 수 있지만, 주로 아파트 단지 등 도시 주변 생활권 나무를 관리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보호수 관리 등도 한다.

“전문가 선발…시험 쉽게 내면 안돼”

서울 양재동 양재시민의 숲에서 열린 ‘숲으로 가자! 놀자, 쉬자, 웃자’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나무의사 되어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양재시민의 숲에서 열린 ‘숲으로 가자! 놀자, 쉬자, 웃자’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나무의사 되어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림청 조연희 사무관은 “그동안 나무 관리를 비전문가가 하다 보니 체계적이지 못하고 농약 오남용으로 수목이 죽거나 자라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일쑤였다”며 “숲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사무관은 “기존 나무 치료 종사자 이외에 일반인에게도 나무의사가 될 기회를 제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다”라며 “시험이 어렵다고 하니 난이도 조정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반면 시험을 쉽게 출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나무의사 시험에 합격한 김철응(52)씨는 “응시자 대부분이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아니다 보니 나무의사 시험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나무의사도 일종의 전문가인데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사람을 선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무의사 수입은 나무병원을 운영하면서 활동하면 연간 1억원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앵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기를 지켜달라는 당부를 받았다고 공개했었죠.

주무부처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이 연일 사퇴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인데요.

정작 이 말을 전했다는 ‘메신저’가 베일에 싸이면서 문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홍선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후 네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여당 의원들도 줄곧 윤 총장을 비판하며 거취를 거론해왔습니다.

[김종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나는 당신들 부하 아니야. 난 국민하고 논쟁해 볼거야, 이런 식으로 풀면 안 됩니다. 이건 정치 행위예요. 그럼 옷 벗으시고 정당에 들어오셔서 정치적으로 논쟁을 하셔야 됩니다.]

그러나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기를 지켜달라는 당부를 받았다고 공개하며 여당 의원들을 당혹 시켰습니다.

[윤석열 / 검찰총장 : 지난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에서 사퇴하라 이런 얘기 나왔을 때도 (대통령께서)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서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면서도, 윤 총장이 말한 메신저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당시 민정수석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다면 가능할 직책의 인사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말로도 해석됩니다.

다만, 현직 청와대 인사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의중을 전할 수 있는 ‘적절한’ 인사가 윤 총장을 만났을 가능성까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는 이른바 ‘메신저’로 불린 사람이 윤 총장에게 개인적인 생각을 전달하면서 대통령의 뜻으로 포장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는 윤 총장 거취와 관련한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가입니다.

추 장관의 행보를 지지하는 여론이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공감하면서 윤 총장 사퇴도 함께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검찰총장의 거취에 대한 대통령의 진의에 관심이 쏠리면서, 윤 총장이 말한 ‘메신저’ 논란은 다음 주에 있을 청와대 국정감사에서도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YTN 홍선기[sunki0524@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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